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고 슈페를레 (문단 편집) === [[제2차 세계 대전]] === 2차 세계대전이 개전되었으나 폴란드 전선에서는 별다른 임무가 없었다. 연이어 [[프랑스 침공|프랑스 전선]]에서 3 항공함대(''Luftflotte 3'')[* 3항공함대는 나중에 서부 공군사령부로 변경된다. 다만 슈페를레는 변경 이전에 해임당한다.]를 이끌고 지상병력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프랑스 전역에서의 승리로 말미암아 슈페를레는 주요 지휘관들과 함께 원수로 진급하였고 개인적으로는 2계급 특진이 이루어졌었다. 이후 [[루프트 바페]]는 [[영국 본토 항공전]]을 대비하여 재편성되었다. 2항공함대는 [[원수(계급)|원수]] [[알베르트 케셀링]]이 지휘하였으며 런던과 잉글랜드 남동쪽 지방을 담당하였고, 노르웨이에 사령부를 두었던 5항공함대는 [[상급대장]] 한스-위르겐 슈툼프에 의해서 북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폭격을 담당하였다. 슈페를레의 3항공함대는 [[파리(프랑스)|파리]]에 사령부를 두고 웨스트컨트리, 웨일스, 미들랜드와 북서잉글랜드를 담당하였다. 하지만 본토 항공전이 길어짐에 따라서 3항공함대의 임무는 야간 공습으로 교체되었고, 주간 공습은 2항공함대에 위임되었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런던에 대한 직접적인 공습이 개시되었는데 이전부터 런던 공습을 강력하게 주장해온 [[알베르트 케셀링]] 장군은 이 결정을 환영하였지만 슈페를레 본인은 [[Bf 109]]의 항속거리와 잔존 영국 공군기의 전력을 고려하면 무모한 작전이라고 반대하였다. 그러나 그를 제외하면 공군 참모총장 한스 에쇼넥 장군을 포함한 주요 지휘부는 런던 공습에 동의하고 있었고 그나마 런던 공습을 자기 선에서 막아왔던 [[헤르만 괴링]] 또한 그간 성과가 기대에 못미쳤기 때문에 기존의 방법을 바꿔서 런던 공습을 승인하게 된다.[* 한참 전부터 일선 부대서는 영국 공군은 조만간 전멸이라고 했는데 그게 몇주씩 잡아늘이면서 피해도 누적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영국 공군이 기습적으로 베를린에 공습을 가했다. 그 와중에 에쇼넥 장군은 런던을 공습하면 잔존 영국 전투기들을 끌어내서 소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했고 괴링도 이를 받아 들인것.] 결국 본인 이외의 주요 지휘관들이 전부 런던 공습에 동의했기에 슈페를레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런던 공습에도 불구하고 당초 기대했던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작전은 실패로 돌아간다. 본토 항공전의 실패 이후 한동안 임무가 없었다. 잠깐 북아프리카 전선의 [[에르빈 롬멜]]의 기갑군을 지원하는 임무가 부여되었으나 곧 노르망디에 연합군이 상륙하면서 서부전선의 항공전 본업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항공전력 자체가 수적으로 매우 부족했기 때문에 연합군 공군과의 교전 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이었고 곧 3 항공함대 사령관의 직위에서 해임되고 [[오토 데슬로흐]] 상급대장으로 교체된다.[* 해임 이후 3 항공함대는 서부공군사령부로 개편된다.] 이후 연합군에 체포되어 [[뉘른베르크 최고사령부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무죄로 판결나면서 풀려난다. 이후 별다른 활동 없이 지내다가 뮌헨에서 1953년 사망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